심심해서

여기에 있는 걸 텍스트큐브로 옮기고 싶은데 어찌해야 하는지 ㅋ

by 구르는곰 | 2010/05/07 14:47 | 트랙백

블러그를 옮깁니다.

http://uldus.textcube.com

조금 귀찮더라도 클릭 한번 하시죠 ^^

by 구르는곰 | 2010/02/02 11:09 | 트랙백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당신에 대한 기억은
고등학교를 다닐 무렵 독서토론회 활동을 하다가 선배들로 부터 들었던 여러 이야기들
마찬가지로 고등학생이었던 92년 대선 당시 
친구들과 얘기를 하다가 김대중 선생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가
의견이 같지 않은 친구들과 심하게 말다툼을 했던 기억
그때 친구가 보여준 전단지 같은 것에는 김대중 선생을 빨갱이로 그린 그림이 있었다.
참 어이 없었지만 그때 그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빨갱이라 불렀던 기억이 난다.

세월이 흘러 난 김대중 대통령의 이름으로 된 사면장을 받게 되었다.
마지막 학생운동세대인 나는 이적단체 규정으로 인해 구치소에 수감되었고
그 안에서 그의 당선소식을 들었고 집행유예로 나오게 되었다.

군대에서 대통령이 국경을 넘어 적국(?)에 갔기 때문에 완전군장을 한 채
남북정상회담을 보았다.

그가 있던 시기 강력하게 추진된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인해 노동자와 서민의 삶이
더 어려워 지기는 했지만 동시에 국가의 기본적인 사회안전망 역시 그 시기에 정비되고
조금씩 제 기능을 했다. 

여러 말이 필요없이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 상당 부분을 그에게 빚을 졌다.
그가 한국 정치 민주화에 가장 큰 역할을 한 투사라는 건 부인 할 수 없다.
또한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에 화해와 평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업적은 두고두고 기려야한다.

2009년 두 분의 전직 대통령의 서거
민주주의 위기
전 방위적으로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지금
염치 없게도 그가 회복하여 모든 개혁, 진보 세력이 힘을 합쳐
이 이상한 정권을 심판하는데 어느 정도 역할을 해주기를 바랬다.
수십년을 빚져 왔으면서도..

부디 편안하게 잠드시라
가시거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만나서 왜 그리 모질게 갔느냐고 야단 한번 쳐 주시라.
두 분의 죽음에 대한 추모가 단지 지금의 정권에 대한 심판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의 흐름을 극복하고 사람사는 세상을 만드는 것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힘을 모아 노력하는데 일조 하겠다는 각오를 해본다.

09년 6월 25일 오찬에서 말씀 하신 것 잘 새겨 듣고 살아갈 것이니 부디 영면 하십시요.

by 구르는곰 | 2009/08/18 21:02 | 하루하루 | 트랙백

여름인데...

굉장히 짜증이 나는 일들의 연속이네
별 것도 아닌 일들도 연달아 일어나니 확 끓어 오르는군
에잉 시바 확 그냥 다 엎어버릴까?

귀찮은 것들 다 쓸어서 바다 속에 처박아 버리고 싶다.

by 구르는곰 | 2009/08/04 08:50 | 하루하루 | 트랙백

7월 18일 북한산 사모바위 / 7월 25일 우이령길

사모바위에서 찍은 사진


우이령길 길은 편안했고
맨발로 걸어봤다.
사람들이 복작복작 되기는 했지만 뭐 그정도 쯤 이해하고
나름 애쓴 흔적들이 보이기는 하지만 아직 좀 더 복원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이령길에서 바라본 오봉이 멋있었고 그나마 요근래 공기가 청명한 편이어서 시야가 좋았다.
북한산이 참 좋기는 하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좀 안쓰럽다.
아무리 생각해도 서울 인구를 줄어야 해 ^^


by 구르는곰 | 2009/07/28 11:26 | 떠나는 즐거움과 산행 | 트랙백

날치기통과 보면서도 좀 명랑해보자 웃기잖아.

대리투표를 말할 필요도 없이 기사를 보니

7월 23일 기사

이날 (22일) 김형오 의장 대신 의사봉을 잡은 이윤성 부의장이 방송법 개정안 표결 실시를 선언했다. 하지만 145명만 투표에 참석했다. 의결정족수에 미달한 것이다. 당시 찬성은 142명이었고, 기권은 3명이었다.

 

이에 이윤성 부의장은 "재석의원이 부족해 표결이 불성립되었기 때문에 다시 투표해 달라"며 재투표를 실시했다. 결국 150명의 찬성과 기권 3명으로 방송법 개정안도 가결됐다


하지만 이강래 민주당 원내대표는 "재석 의석이 294명이어서 방송법이 유효하게 성립하려면 148명이 투표해야 하는데 첫 번째 표결에서 145명밖에 투표하지 않았다"며 "표결 자체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에 원천무효"라고 주장했다.

 

김종철 진보신당 대변인도 "투표종료 당시 국회법 109조 의결정족수 조항에 따라 재적 과반수에 미달한 것이므로 이 안건(방송법 개정안)은 부결된 것"이라며 "이 경우, 국회법 92조에 따라 일사부재의가 불가능함에도 불구하고 국회 부의장이 그 자리에서 재투표를 지시한 것은 국회법에서 정한 자신의 권한을 초과하여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형준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는 "일사부재의 원칙대로 하면 방송법은 의결정족수를 채우지 못했기 때문에 부결된 것으로 봐야 한다"며 "한번 부결된 법안은 다음 회기에 다시 처리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출처 : 본회의장 불참한 나경원-이정현 '재석'
'반대' 빨간불이 '찬성' 파란불로 바뀌기도 - 오마이뉴스


물론 반대의견도 있다.

하지만 이윤성 부의장의 재투표가 적법한 조치였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구기성 전 국회사무처 의사국장은 "국회법에 따르면 과반수 의원이 출석해야 표결이 성립한다"며 "과반수 출석이 안되면 투표행위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에 재투표에 들어가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한 변호사도 "국회법 해설집을 보면 의장이 표결을 선포했지만 재적의원수가 의결정족수가 안되면 표결이 성립되지 않았음을 선포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어 재투표는 문제없다"며 "아마도 이윤성 부의장은 국회 의사과에서 조언한 대로 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윤성 부의장이 '투표 종료'를 선언하지 않은 상황에서 의결정족수 부족을 이유로 재투표를 실시했다면 몰라도 '투표 종료'를 한 상황이기 때문에 무효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이건 머 애들 장난도 아니고
로마군단병처럼 병풍처럼 막고
돌아가며 투표하느라 애썼지만, 욕봤지만
웃기잖아. 정족수 미달 맞잖아
그러게 거물급들은 옷잡히기 싫어서 험한꼴로 언론에 나오기 싫어 점잔빼다가
결국 정족수 미달이네 ㅋㅋ
헌법재판소를 기대하마

by 구르는곰 | 2009/07/23 13:41 | 하루하루 | 트랙백

미디어법 날치기 통과(대리투표,재투표 등 치사하게)를 보며

일단, 난 한나라당이 상정안 미디어관련 법안 반대한다.
거대재벌과 그들이 갖고 있거나 유착관계에 있는 신문사들이 또 방송국까지 가지게 된다.
이거 끔찍하다. 조중동이 신문가지고도 이렇게 세상을 속이는데 사람들의 눈을 가리고 선동하는데
방송까지 하게 된다. 돈있고 힘있는 자들만 위하는 방송이 될 거라는거 그리고 가끔 불우한 이웃을 위해 돕는 아름다운 모습 연출 하겠지. 선택 받은 불우한 이웃들만
예전 외화에서 보던 온갖 영상들이 흘러넘치는데 죄다 광고 아니면 연예프로 비슷한 것들만 흘러넘치고
실시간 시청률 집계에 모두들 더 자극적인 것을 찾고 사람들은 바보가 되어가고 뭐 이런 외화들 본 기억이
난다. 한국도 그런 비슷한 상황이 될 듯하다. 싫다.

허나 지금 주류(?)언론인들 공중파방송국에서 일하는 기자나 피디들 그들은 과연 잘했나?
물론 어려운 시험봐서 힘들게 들어간거 안다. 허나 그들 대부분 삼성에서 일하는 대리가 중소기업 사장에게
"똑바로 못해!" 하며 거들먹 거리는 짓거리 그대로 따라했다.

딴지일보 관련기사 - 어느 독립 PD의 넋두리

나 역시 살면서 그 사람들의 본의와 다를 수 있겠지만 사람을 마구 홀대하는 PD들 봤다.
하다 못해 지방방송국도 저런데 메인은 어떨까 싶어 끔직했던 기억이 있다.

정말 미디어법이 무효화 되고 공정방송을 하고 싶으면 당신들도 변해야 한다.
그리고 시늉만 내지말고 지대로 싸워라. 전부 사표 던지고 싸워라.
비정규직 계약해지 될 때 강건너 불구경한 KBS노조 진정성을 보여라.
대한민국의 또 하나의 권력처럼 살아가는 PD들 미디어법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반적인 방송제작 환경에 대한 고민과 대안을 제시해 봐라.
말로만 공정방송, 공영방송 하지 말고
세상을 제대로 바라보고 보도해 봐라.

대충 시늉하다가 슬슬 자기 앞가림하러 뒷걸음질 치지마라 그런 꼴 보기 싫다.


이 문제는 이제 그만 접고
절라 십라 엿같은 대리투표, 재투표 해놓고 좋아라 하는 한나라당
니네는 정말 국회의원의 자격이 없다.
절대 사퇴안할 사람들이니
이제 당신들은 딱 비정규직 평균 임금 5인의 비용만 받고 일해라
그게 맞다. 비정규직의 아픔을 함께 한다며, 서민을 위한다며
그럼 올해 남은 5개월 만이라도 딱 비정규직 평균 임금만 받아. 이제 9월 정기국회에서는 노동조합 목조르는 법을 통과
시키겠지. 생각도 없고 의지도 없고 그냥 청와대 시키는대로 일하시는데 정책개발이런 비용 쓸 필요 없잖아.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고 서민을 위한다고 했잖아 그래서 미디어법도 통과 시키고 금융지주회사법도 통과 시키고
4대강 살리기에 22조 +알파 까지 쏟아 부을 꺼잖아. 그럼 니들도 좀 보태.
걍 그렇게만 해라 올해들어 보니 별 생각없이 시키는대로만 하는 것 같던데
괜히 쓸데없는 해외연수 이런거 하지 말고
그냥 국회에서 정문도 지키고 의사당도 지키면서 시간제근로자의 아픔이나 조금 공유해봐라
최저임금도 받아보고

기도 한나라당 화이링 - 당신들은 대한민국 거꾸로의 주역입니다.

by 구르는곰 | 2009/07/23 10:57 | 세상소식 | 트랙백(1)

월둔에서 방동약수까지 - 7월 12일

주룩주룩 내리는 비를 맞고 걸었다.

이렇게 원시림을 걸어가는 트레킹 코스이다.
원시림이란 말이 말해주듯 여기는 차도 못들어온다. (왜 길 곳곳이 수십년간 비로 인해 파이고 깍여 나가서)
그러나 4륜구동 동호회에서 자주 오는 것 같다. 풀이 가운데만 나 있지 않은가?
제발 이런 곳에 차 끌고 와서 시끄럽게 굴고 길 패이게 하는 짓 좀 하지 말지.

그리고 핸드폰 불통 지역이다. 시작점부터 20km가량 핸드폰 터지지 않는다.
무슨 일이 있어도 여기를 나와야 집에 갈 수 있다는 말이다.
하여 끊임없이 걸었다. 처음에는 좋았지. 비가 오니 날도 선선하고
걸으면서 이런 멋진 원시림을 보기도 하고
계곡도 보고

곳곳에 이런 계곡이 있다.
아니지 이런 계곡 옆에 길을 만들었다. 근데 그 길을 오랫동안 돌보지 않아서 자연과 어우러진 멋진 트레킹 코스가 되었지만
여러군데 다리가 끊어졌고 아예 처음부터 엉뚱한 곳에 다리를 만든 경우도 있다.
이런 계곡이 비가 많이 오니 이렇게 변한다.
계곡물들이 폭주족처럼 내달린다. 아예 광란의 질주를 하고 있다.

이어서 곧 우리는 계곡을 건너야 했다. 놓여 있는 다리중 좀 과장하면 절반은 유실 되어있는 듯 하다.
이런 광란의 질주를 하는 물살을 헤치며
긴박해 보이지 않나? 이건 약과다. 물살이 거세어져서 떠내려가지 않도록 통나무를 가로질러 놓았다
그만큼 짧은 코스였다. 차고 빠른 물살
개구리무늬 판초우의 나다. ^^

조경분교를 한시간 가량 남겨두고 만난 끊어진 다리
약 2.7미터 정도 되는 높이이다. 한 층 정도를 뛰어 내려서 계곡을 건어야 한다. 밑에서 잘 잡아주는 저 분
남자는 그냥 뛰어내려 이러신다. 그래서 그냥 뛰어내렸다. 바보는 아니어서 베낭을 위에다 놓고 뛰어 내렸는데
그  다음 뛰어내린 친구는 베낭을 매고 뛰어내려서 베낭무게 때문에 뒤로 넘어졌다. 당연하지 ^^
물살이 거세고 허리를 지나 배와 가슴정도 까지의 깊이라 자칫넘어지면 휩쓸려 갈 수 있어서
세명씩 묶어서 건넜다. 이 후 나와 몇몇 사람들이 늘어서서 사람들을 잡아주었다.
저길 건너다가 베낭안으로 물이 들어갔다. ㅜㅜ 갈아입을 옷을 차에 두고 왔어야 했는데

이제 조경분교까지는 끊어진 다리가 없다 했지만 마지막 다리는 짧은 거리가 끊어져 있었다.
거리는 짧지만 물살이 사람 키 높이 까지 솟구치며 흘러가고 있어서 도저히 건널 수 없다고 생각해서 다시 뒤로 돌아서
계곡을 따라 샛길로 갔다. 계곡이 S형이라 다행이었다. 난 그 샛길이 제일 무서웠다.
옆에 계곡물은 늘어나지 계속되는 비로 산에서 끊임없이 물이 흘러내리고 있어서 혹여야 길이 무너지면
그냥 급류에 휩쓸리게 되는 길이었다. 다행이 아무일 없이 그곳을 지나기는 했지만
앞서 가는 사람중에 한 명은 길이 살짝 무너지면서 2미터정도 미끄러져 내려갔다가 올라왔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조경분교에 도착
다들 배가 고팠지 중간에 잠깐 서서 요기를 한거 말고는 줄창 6시간 이상을 걸어 왔으니
분교에 살고있는 후덕한 주인아저씨가 땔감으로 난로에 불을 지펴주어 젖은 옷과 몸을 조금이나마 말릴 수 있었다.
대충 사진 봐도 알겠지만 다들 등산에 익숙치 않아 복장이 그냥 평상복이다. 잘 마르지 않는 면옷들
심지어 청바지를 입고 온 친구도 있었다.

그래도 경치는 정말 좋았다.
운무가 가려진 산등성이들과 그 사이 계곡들
그리고 그 속에서 척박한 땅을 일구며 살아가는 사람들



이건 역사와 산 산행대장이 나를 찍어준 것이다. 사진에 찍히지 않으려 이리저리 피했지만 ㅋㅋ


우여곡절 끝에 모두 무사히
잘 내려와서 밥도 잘 먹고 이제 집으로 가면 되는데
내린천이 넘쳐서 도로에 물이 출렁거렸다.
근데 경찰도 아닌 자율방범대원이 버스를 그냥 통과 시켰다. 달리던 버스였기에 저 물에 버스가 들어갔다가
겨우 후진으로 나왔다. 스페어 타이어가 날라가고 앞문이 자동문에서 수동문으로 바뀌기는 했지만 다행이었다.
천만다행이었지. 길이 경사가 졌고 버스가 길어서 마후라에 물이 안들어와서 그렇지 물이 들어와서 시동이 꺼졌으면
유리창 깨고 나와야 했다. 이미 앞문에 물이 들어와 앞문이 잘 열리지도 않을 상황이었다.
나중에 경찰이 허겁지겁 와서 누가 보냈냐고 어떻게 여길 들어왔냐고 난리다
지들이 잘 못 해놓고 큰소리는 시앙 지들이 딴짓 하고 자율방범대원끼리 있다보니 그냥 보낸거다
아마 자율방범대원 생각에는 버스가 승용차보다 높으니까 빠져 나갈거라 생각했나 본데
물이 얼마나 빠르게 늘어나는지 이 동네 살면서도 모르나 그 자율방범대원도 우리가 무사해서 다행이지
만약 사고 났으면 난리 나는거지.  에효 하여간 무사히 나와서 집에 왔다.


무사히 빠져 나온 후 찍은 사진 저 넘치는 물결을 봐라
저기 있다가는 그냥 버스로 래프팅 하는 거지 그러다가 넘어지면 그대로 수장이고 ㅜㅜ
정말 천만  다행 이었다.

그 다음에는 이런 길로 집에 잘 왔다.
근데 여기 방동약수 앞 길 같네 ㅋㅋ
방동약수 먹어볼 엄두도 낼 수 없었다. 온통 흙탕물 그리고 그 옆을 세차게 흐르는 계곡소리
이제 웬만한 물은 무섭지 않을 것 같아. ^^

이번 산행에서 배운 것은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다면 준비 철저
그리고 자연 앞에서는 무조건 겸손해지자 !!
과욕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비속을 9시간 걷는 다는 것이
내가 리딩을 한다면 물론 위험하면 피하는 성격상 일찍 끝내고 내려가서 낮술 한잔 했을거다. ㅋ
이 후 버스 안에서 적절한 평가를 했다.
이번 산행을 계기로 앞으로 더욱 발전하는 역사와 산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by 구르는곰 | 2009/07/14 17:32 | 떠나는 즐거움과 산행 | 트랙백

월둔에서 방동약수까지 - 역사와 산 7월 정기산행



월둔에서 방동약수까지 갔다 왔다.

토요일 오후 무척이나 피곤했다.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교육연수를 받으며 밤마다 술을 마셨다.
전국에서 모인 각양각색의 사람들이라 이야기꺼리도 많고 다들 재밌는 사람들이라 술자리가 즐거웠다.
덕분에 제주와 부산에 먹고 잘 수 있는 거점을 확보하기도 했고 ^^
여주에서 하는 교육이라 이천에 있는 친구와 전화 통화로 교육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금요일 이천에 들러서 친구를 보고 가기로 했다. 가벼운 마음에 잠깐 들러 얼굴 보고 갈까 했는데 친구 왈 '여기까지 와서 잠깐 보고 가냐? 저녁에 술 한잔 하자.'
그러자고 했다. 허나 친구의 일이 늦게 끝나게되어 저녁 8시쯤 만나게 되었다. 이천에서 집에 가는 버스는 일찍 끊어지기에
집에 가는 것을 포기하고 3일 연짱 마신 술을 하루 더 마시게 되었다. 친구가 자주 얘기하던 직장동료들과 함께 마셨다.
이천에서 사회적 기업을 만들어서 고생을 하고 있는 친구라 하고 싶은 말이 많았고 동료들도 나름 다 개성적인 사람들 이었다.
이래저래 술을 마시고 토요일 이천에서 잠을 자고 어영부영 친구가 있는 회사에 가서 좀 놀다가 점심까지 먹고 집에 갔다.
토요일 오후 당연히 피곤했다.

토요일 오후, '오늘밤에 방태산을 가야하는데...', '아 피곤하다 그냥 푹 자버릴까?' 고민하며 시간이 지났다.
일단 비가 많이 온다는 예보가 있기에 총무님에게 문자를 날려본다. 답변 "네 오세요 예정대로 가요 넘 많이 오면 대안을 세울께요"
역시 예상했던 바이다. 나 역시 동호회에서 산행을 진행할 때, 일단 약속대로 진행한다. 핑계삼아 일정을 포기하게 되면 사람들은 으레 그러는 줄 알고 연락도 안하고 나오지도 않게 된다. '무조건 일정사수, 단 여건과 상황에 따라 진행' 그동안 동호회 활동을 하며 배운 것이다. 그래서 비오는 날 산행을 하다 일찍 하산해서 영화도 보고 낮술도 하고 뭐 그랬다. 그리고 나의 성향이 '굳이 정상 갈 필요 있나? 어려우면 돌아가거나 피하자! 단, 피할 수 없고 굳이 해야한다면 과감하게!' 이다. 그래서 어려우면 일단 피한다. ^^

집에서 참석자 댓글을 보며 초등학생도 있고, 초보자도 있고 하니 예정대로 진행하지 않고 좀 느긋하고 짧게 할거라고 지레 짐작했다. 그래도 비가 오는 가운데 진행하는 것이니 옷은 넉넉히 가지고 가야겠고, 지난 지리산 산행에는 젓가락만 가져 갔으니 밥은 가져가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비가 올테니 뜨거운 물과 커피를 가져갈까 하다가 지리산에서 코펠과 버너를 가져오는 사람들을 봤기에 뭐 무겁게 보온물통을 가지고 갈 필요가 있을까 생각했다. (나중에 후회 많이 했다.)

집결장소에 도착해서 슬쩍 둘러보니 지난 지리산 산행에 갔던 사람보다 처음 보는 사람이 많았다. 장소를 가리거나 낯을 가리지는 않지만 구태여 먼저 말을 하지 않는 성격에다가 무척 피곤한 상태였기에 일단 자리잡고 잤다. 버스가 인제로 들어가던 중 길이 잘 보이지 않아서 버스가 커브를 돌지 못할 무렵 깨어났다. 창밖을 보니 비가 솔찮이 내리고 있었다. 트레킹코스로 간다고 이야기를 했기에 크게 걱정은 안했지만  '비가 좀 더 오면 중간에 턴하겠지' 머 이렇게 생각했다. 이윽고 도착을 하고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가 우비를 챙겨입고 버스에서 내렸다. 나 역시 산행을 이끌 때 별다른 대안없이 이러쿵저러쿵 말하는거 상당히 듣기 싫었기에 '내가 놀던 곳이 아니니 내가 무슨 말을 하거나 행동하지는 말고 그저 비를 맞을 때는 먼저 맞고 비를 피할 때는 마지막에 하자'고 생각했다. 

트레킹이 시작되었고 별 걱정없이 갔다. 무장공비 도주로의 표시판을 보고 이 지역 사람들이 살면서 참 많은 고초를 겪으며 살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이 길을 만들면서 얼마나 많은 군인들이 고생을 했을까 싶었다. 비가 맞으며 걷고 있으니 몸에 점점 발동이 걸리는구나 싶어 좋았는데 배가 고파졌다. 이 비를 맞으며 밥을 먹으려면 난 지팡이와 판쵸우의가 있으니 3~4명과 함께 비 피하며 밥을 먹을텐데 다른 사람들은 어쩔까 싶었다. 허나 상황은 그렇지 못하고 그냥 일행들이 길게 늘어서서 간단히 요기를 했다. 그래도 역사와 산 사람들은 서로 나누고 배려하는 것에 익숙하고 총무님이나 회원님들이 왔다갔다 하며 이것저것 나눠주어서 어느정도 요기를 하니 살만했다. '가야할 길이 멀지만 주변 광경이 아름다워 피곤한 줄 몰랐다.' 비가 안오면 이런 말이 씌여졌을 거다. 허나 비때문에 불어난 계곡이 내는 소리를 들으며 걷고 있으니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보다 걱정이 슬슬 되었다.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는 가사처럼 불어난 물 때문에 물살을 헤치고 건너가길 여러번 그렇지만 서툴더라도 서로서로 도와주려는 마음이 있어 별 탈없이 어려운 길을 지나갔다. 이윽고 한 길이 넘은 높이에서 뛰어내려서 건너가야 하는 끊어진 다리를 만났다. 일행중 후미에 있었기에 다리에 도착하니 몇사람은 건너갔고 물살 속에 두어명이 서서 사람들을 잡아주고 있었다. 물은 차고 물살은 거세니 얼른 교대를 해주어야 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밑에서 '남자는 그냥 뛰어 내려 괜찮아' 이렇게 말을 했지만 이건 남자, 여자 혹은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이 상황에서 침착하느냐 못하느냐 가 문제인 듯 했다. 베낭과 스틱을 주고 뛰어내려서 건너편에 베낭을 내려놓고 사람들이 건너는 것을 도와주었다. 처음에는 '내가 겁을 먹어서 인가?' 하고 생각도 해봤지만 물살이 거세지고 있는게 사실이었다. 사람들이 서로 잡고 늘어서서 손을 잡아주면서 건너는 속도가 빨라졌다. 차가운 물속에 있다가 나오니 오히려 비가 따뜻하게 느껴졌다.

앞으로는 이런 끊어진 다리가 없을 거라고 해서 믿고 갔지만 조경분교에 가기전 이번에는 사람 키 높이 까지 물살이 솟구치는 끊어진 다리를 만났다. 빠른 상황 판단으로 집행부에서 계곡을 따라 우회해서 가기로 했다. 그러나 편하게 설명할 설명이 아니어서 대충 주워들었는데 난 잘 못 알아들어 다리 건너편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아예 능선을 타고 분교까지 간다는 것으로 알아 들었다. 좀 더 차분히 설명을 해주었으면 했다. 좀 무모하지 않을까 생각은 했지만 다른 방법이 없어 보였다. 허나 내가 진행을 했다고 해도 별 수 없이 이 우회길을 택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위험한 길 이었지만 무사히 지나왔다. 분교를 향해 걸어 가면서 지난 달 지리산에서는 더워서 고생하더니 이번에는 비와 계곡물로 한기가 느껴져서 고생하는구나 하면서 '중간은 없군 역사와 산을 다니면 나의 회색인간 정체성이 벗겨질려나?' 머 이런 잡다한 생각을 하며 걸었다. 

어찌되었건 무사히 분교에 도착을 했고 친절한 주인아저씨 덕택에 교실에서 비도 피하고 난로에 땔감으로 불을 피워 사람들 추위를 조금이라도 녹일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난 무엇보다 문짝이 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화장실을 이용하게 되어 안도를 했다. ^^
문짝이 없기에 꽤 오랜 시간을 기다리다가 화장실에 갔다오니 안에서는 아침겸 점심 식사를 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술 한잔 생각이 간절했는데 총무님이 따라준 매취순이 무척 달콤하니 좋았다. 서로 밥도 나누고 온기도 나누는 역사와 산의 식사시간이 좋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산에서 남에게 나눠주듯 배려하듯 일상생활에서도 그렇게 해야 하는데 막상 잘 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더욱 이런 모습을 보기위해 산에 오는 것일지도...

식사를 마치고 방동약수까지 가는 길은 그리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산에서 내려오는 물로 인해 길 곳곳이 잠겨 있어서 찬물을 계속 지나가야 한다는 것이 힘들었다. 오랜 시간 비를 맞으며 걷는 것도 힘든데 찬물에 계속 발이 잠겨야 했다. 다른 동호회에서 한여름에 저체온증 걸린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 혹시나 일행중 누군가 저체온증에 걸리지 않을까? 혹은 체력저하로 주저 앉은 사람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다들 무사히 내려와서 다행이었다.
  
모자라거나 넘침이 없이 일을 진행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 줄은 알지만 이번에는 좀 과욕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오랜 세월 다져진 믿음이나 서로에 대한 배려가 보기 좋았다. 사람들이 모여서 만들어내는 에너지가 왕성하고 그 에너지를 나눠주는 동호회라고 느껴졌다. 마음에 드는 점은 키우고 마음에 들지않는 점은 서로 노력하면서 역사와 산이 나와 즐거운 동행이 되기를 바란다.


작지만 크게 바라는 것들...
역사와 산이라는 이름이 마음에 들어 가입을 했지만 출발하면서 나눠주는 산행기획서에만 잠깐 역사가 있고 그 이후에는 산만 있는 것 같아 아쉽다. 현재 활동하는 등산 동호회에서 채워지지 않는 아쉬움이 있어 역사와 산을 가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개인적인 욕심인거 안다. 하지만 산과 역사가 함께 공존하는 모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

산행을 진행할 때 전체와 일부를 나누어서 했으면 한다.
30명 이상을 한꺼번에 움직인 다는 것이 무리라는 생각을 한다. 전체 대장이 있고 조를 나누면 어떨까 생각한다.
지금 두번 산행을 해봐도 이미 선두와 후미로 나누워서 진행이 되는 것 같다. 그러니 아예 시작 할때 조를 나누워서 통솔하면 인원파악이나 상황대처가 더 신속하고 정확하게 이뤄질 것 같다.   




by 구르는곰 | 2009/07/13 21:10 | 떠나는 즐거움과 산행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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